Column

[한겨레신문] 노대통령께 드리는 글 (2004-07-26)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372


  저는 ‘노사모’가 아닙니다. ‘노사모’는 아니었지만 저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아마 상당수의 ‘노사모’보다 더욱 노무현후보를 지지했고 제 지인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왜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및 경제발전에 더욱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주장했었습니다. 저의 경우 대체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던지라 이들과의 정치적 담론에서는 주로 ‘왕따’를 당하는 신세였습니다.
  저는 노무현후보의 민주화운동 경력과 진솔함 그리고 서민적 풍모가, 이회창후보의 경력 및 외양에서 보이는 엘리트주의와 고집스러움 그리고 귀족적 인상에 비해 더욱 바람직한 21세기형 지도자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회창후보의 화려한 경력에서 유추되기 쉬운 폐쇄적이고 이기주의적일 것 같은 주변인보다는,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진 노무현후보의 주변인이 우리나라의 실상과 여론을 더욱 잘 반영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통일에 대한 전향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통일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토론을 즐겨하는 노무현후보가, 상명하달식 법조계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이회창후보보다 더욱 호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믿음은 이제 거의 소진되어 갑니다. 사안마다 정권의 진퇴와 피아 구별을 조장하는 듯한 언행에서 21세기형 아집과 독선을 봅니다.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다수 국민의 여론을 대통령 탄핵세력으로 치부하면서, 갈수록 폐쇄화되고 독선으로 흐르는 대통령과 주변인들을 봅니다. 수도이전의 정당성을 거론하면서 통일이 ‘기약할 수 없는’ 미래라고 주장하는 반통일적 사고들을 봅니다. 수도이전에 대한 정책적 담론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말에 한술 더 뜨는 청와대 주변인들의 극단적 상명하달을 봅니다.
  저는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에 미혹된 충청도 주민들의 표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가지고 있던 희망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저와 같은 다수의 국민에 의해 당선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도이전 반대는 퇴진론자’라는 노대통령의 단언 이후 대통령의 주변에서 나오는 주장들은 저와 같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저는 지역개발을 전공하는 사회과학자입니다. 제가 하는 연구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지역격차 및 지역불균형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저는 수도이전이 수도권의 경제적 비효율성과 지방의 공동화라는 이율배반적인 국토불균형해소에 일정 정도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막대한 예산으로 실행할 정책적 개입이라면 수도이전보다는 보다 효율적인 다른 대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도이전이 가져올 경부축과 비경부축의 지역격차 확대, 항상적 지역성장정책이 아닌 한시적 지역배분에 따른 국부증대의 저해, 국제화시대 내부적 균형논의가 야기할지도 모를 국가 경쟁력 제고의 걸림돌, 자본주의 체제 수용이 시작된 북한과 통일 이후 수도건설에 따른 중복투자의 비효율성, 열린사회로 진전하고 있는 북한과 우리가 생각해야 할 통일비용 등과 같은 문제들은 수도이전과 관련하여 정치적 입장에 상관없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수도이전의 논의에서 이러한 질의에 대한 심도 깊은 고려는 부족한 상태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은 노무현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치적을 쌓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국민들은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불필요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민초들이니까요. 돌아서고 있는 지지층은 노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단지 수도이전이 가져올지도 모를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일뿐입니다. 부디 언로와 대화를 다원화하시고 대통령 후보 시절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기억하셔서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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