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의 위기는 상당 부분 사회 전체에서 인식하고 있는 개인 또는 집단의 명시적 기능에 대한 사회공헌도가 한계화될 때 부각된다. 올해로 설립한 지 과반세기가 되는 농협중앙회(이하 농협)의 명시적 기능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1994년 김영삼정부 이래 지난 17년간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은 그동안 농협이 농산물 유통·판매를 통해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은행·증권·보험 등 소위 돈이 되는 장사에 치중해 소수 농협 직원들의 안식처로 전락해 왔다는 비판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지난 4일 국회 농수산식품위원회를 통과한 농협법 개정안은 이달에 개최되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될 것으로 판단되며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를 골자로 한 소위 농협 개혁 법안이 내년부터 실효성을 가질 것으로 여겨진다. 그 동안 농협은 금융업에 전체 인력의 대부분을 투입해 정작 설립 목적인 농산물 유통·판매 분야에서의 비중은 전체 출하액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의 자체자본금 12조원 가운데 30%를 경제사업 분야에 배정하는 안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사업구조 개편이 실행될 경우 농협의 산지 농축산물 취급 비중은 2020년 50% 이상으로 확대돼 농민들에 대한 직접적 수혜 이익만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농민과 소비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기대되는데 이를 가름하는 것은 향후 논의될 시행령 등을 포함한 다양한 후속조치들이 관건이라 하겠다. 농협 경제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특히 다음의 네 가지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길 기대한다. 첫째, 경제사업 초기 사업의 안정화를 위해 약 30%에 달하는 경제사업 분야에 대한 자본금 배분 이외에도 농협금융지주회사에서 농협경제지주회사로 매년 매출액 또는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 조치는 한시적으로 설정되어 경제사업 분야에서의 실질적 경쟁력 강화로 귀결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향후 설립될 경제사업 분야 자회사 설립에서의 전문성 확보다. 행여나 이러한 사업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영입에 있어 전관예우 차원의 인선이나 정치적 배경이 작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주어진 사업 영역에서 철저하게 돈을 벌 줄 아는 전문경영인이 위치하도록 해야겠다.
셋째,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지역 100개 유통 법인 설립에 따른 업무 영역의 중복이 없도록 해야겠다. 농어촌 지역 100개 시군에 설립될 유통 법인들이 담당할 내용이 현재로서는 농협의 농축산물 유통 및 판매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농업분야 정부재정 사업의 고질적 문제였던 중복 및 반복투자에 따른 재정의 효율성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으므로 향후 후속조치에 대한 논의에서 심도 있는 검토가 있어야 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경제사업 분야 자회사의 구성에서 현재 정부의 농촌개발 사업에 따라 과잉 양산되고 있는 농산물 2, 3차 가공품을 전담하는 회사의 설립을 고려해야 한다. 참여정부 이래 농산품 가공 및 판매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목표 하에 정부 재정지원으로 설립된 농업법인의 수는 수백개에 달한다. 이들 농업법인의 문제는 정부 재정 지원이 끝나는 순간 법인의 운명도 땅속에 묻히고 그나마 시장 경쟁력 있는 일부 농산품들의 사장을 통해 정부 재정의 매몰 비용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농수산식품부가 직접 지원하는 향토산업육성사업과 광역발전특별회계를 통해 자치단체가 직접 지원하는 포괄보조사업 중 농어촌자원복합산업화지원 등을 통해 양산되고 있는 농업법인들의 2차, 3차 가공품들은 대부분 유사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설립될 농협 경제분야 자회사는 1차산품인 농산물의 유통 및 판매 뿐만 아니라 이들 농업회사법인이 생산한 2차, 3차 가공품에 대한 유통 및 판매를 전담할 자회사를 설립하여 농협과 이들 법인이 공생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기를 권고한다.
수십년의 논의와 엄청난 산고를 거쳐 탄생한 농협법 개정안이 세밀한 후속 조치들의 마련을 통해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의 발전에 주춧돌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