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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천안함 대응은 차가운 머리로 (2010-04-21)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39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국가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에도 성장률 등 각종 지표상의 회복이 체감경기 호전으로 귀결될지 여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3월 전국의 신설법인이 지난 8년여 만에 최대의 증가를 기록했다는 보도는 따뜻한 봄기운이 감도는 소식이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예측한 하반기 고용시장의 개선 등 서민경기의 변화가 시장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가까운 미래에 체감경기가 더욱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 같은 기대감에도 '서울의 날씨는 많이 따뜻해졌지만 천안함 사고로 봄기운을 느끼기는 힘든 상황이에요. 북한의 공격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라는 서울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e메일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표현할 만큼 우리 국민의 최근 정세에 대한 참담하고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듯하다.
  역사가 반복이라고 한다면 조선역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사건들의 재해석을 통해 현재적 상황에 대한 다양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이한우의 책 '왜 조선은 정도전을 버렸는가'는 작금의 사태 대처에 필요한 의미 있는 사례들을 담고 있다. 미확인된 헛소문이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것이 없는 듯하다. 고종 25년인 1888년 서울 장안은 엄청난 소요 사태에 휘말렸는데 그 발단은 몇몇 어린이들의 유괴사건이었다. 개방의 파고가 밀려드는 시기였기에 '일본인들이 어린이 요리를 먹는다' 또는 '외국인들이 어린이를 이용한 약을 만든다' 등 그야말로 황당한 루머가 난무했다. 이후 전개된 국민적 수준의 외국인 혐오증과 이로 인한 개방의 반감이 결국 일제에 귀속되는 수순을 더욱 쉽게 만든 것은 아닐까. 전 세계적인 격변기에 전근대 수준의 민도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이후의 결과가 너무나 참담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천안함 침몰 이후 국민의 걱정은 사건의 전말이 '북한이 개입했을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다면'이라는 가정이 현실화될 때의 상황에 대한 우려로 모아지는 듯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정부의 천안함 사고 조사를 주시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그 어떤 예단에 기초한 정치적 주장이 무분별하게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카더라'라는 미확인된 루머가 가져오는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파장은 조선시대 있었던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광우병 사태 때 모자람이 없이 경험했듯 현재진행형임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평시에도 그렇지만 작금의 상황은 정치권과 사회적 지도자들의 초당적·초이념적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조선 명종시대부터 시작된 각종 사화는 왜란 및 호란과 같은 국가적 존망을 가름하는 시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정치 및 사회 분열의 단초였고 이 단초가 당쟁과 이념을 달리하는 세력간의 권력 다툼이었음은 주지의 일이다. 조선시대 최대의 위기였던 선조시대 임진왜란도 후궁의 손자가 왕위를 계승한데 따른 정통성 시비와 이에 결부된 당파싸움이 왜란에 보다 능률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구조를 형성한데 따름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과 현 정부의 정통성에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는 현재에도 이념적·정치적 논리로 천안함 사건에 대응하는 것은 국가위기 시대 참다운 사회지도층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특히 현 정부가 취하고 있는 신중한 행보에 대해 예단에 기초한 대응 방안을 무분별하게 주문하는 것은 조선시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당시에 비견될 수준으로 염려스럽다.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도 나오기 전에 아랍권에 대한 이스라엘 수준의 대응 심지어는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일부 인사들의 행태는 국제질서와 상식 그리고 우리 후손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려한 이후 제시하는 방책인지 묻고 싶다.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 확보 전까지는 예단에 기초한 대응 방안을 논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상황대응은 결코 지나치리만큼 신중한 것이 아니라 믿는다. 여야와 이념을 초월해 현 정부의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처신을 지지하고 그래서 민족적 재난을 초래할 수도 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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