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가 선명성과 소신으로 이해되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MB정부가 표방하는 중도실용 정책이 다시 논란거리다. ‘중도’나 ‘실용’의 한 어구만으로도 어구 자체의 어원론적 인식상 기회주의로 비치기 일상이다. 하물며 이 둘을 합했으니 좌 또는 우의 원리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냉소를 초래하는 것은 지극히 예측된 결과라 하겠다. 중도실용은 사실 중도라는 부가적 표현이 필요 없는 실용주의가 지향하는 이론의 근간이며 MB가 표방해온 창조적 실용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실용주의는 상대주의에 기초한 실천적 합리성과 상황적 합리성 그리고 공생적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실용주의는 상대주의적 논리의 취약성으로 인해 철학적 사고에서도 원칙과 이론이 불투명한 학문으로 인식되어 유럽중심의 합리주의와 보편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상당 기간 냉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사회에 기저하고 있는 인식론적 근간으로 삼아 온 미국의 정치·경제적 성공은 철학적 사고에 있어서도 전 세계적으로 실용주의의 보편성과 수월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책으로 투영되는 MB정부의 창조적 실용주의는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변화에 대한 이해(상황적 합리성)를 통해 끊임없는 혁신이 가능한 시장경쟁체제의 제도적 틀 설정(실천적 합리성),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계층에 대한 이해와 경쟁체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시장약자에 대한 배려(공생적 합리성)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사고가 21세기 세계변화의 주요 흐름인 다수가 가치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위키노믹스(wikinomics) 체제 및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보장하는 복잡계경제(complex economics)체제에 더욱 부합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MB정부의 지난 1년 반은 실용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실질적으로 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음이 자명하다. 극한으로 치달았던 좌우의 이념적 대립과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국내외적 여건이 주요 변수였지만 실용주의적 원칙에 무지했던 ‘강부자·고소영식’ 초기 인사의 실패 또한 아쉬움의 주요 요인이다.
최근 친서민정책을 지향하는 MB의 중도실용은 창조적 실용주의를 표방했던 초기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실질적인 실용주의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 전환이다. 이것은 MB정부 초기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 만능주의로 비쳐진 오해를 불식하고 실용주의의 원칙에서 유일한 이념이라 할 수 있는 ‘공생적 합리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기간 시장효율을 확보하여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한 ‘실천적 합리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및 시장 강자들의 법치의식 확립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법치의 확립이 새로운 잠재성장 발굴에 필수적인 경쟁시장 형성의 필요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통해 시장의 경제적 효율성 확보, 그리고 공정시장의 토대를 흔드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근절과 시장 강자들의 비리 엄단 등이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공무원에 대한 평가체제의 변화는 MB정부 초기 약속되었음에도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한 평가가 현재와 같은 법리적 집행에서 성과형 집행으로 변화하는 것은 경쟁시장 효율성 제고를 통해 ‘실천적 합리성’ 제고를 위한 충분조건이다.
환경변화에 따른 ‘상황적 합리성’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및 친박계 인사 등용 등과 같은 정치권 인사들의 중용을 통한 지지율 상승, 그리고 변화된 환율 및 재정정책 등과 같은 신속한 정책 대응을 통해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풀어 나가는 결과로 대변된다. 하지만 세종시로 압축되는 국내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은 해결의 단초를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세종시가 새로운 가치창출을 통해 국가성장과 지역발전이라는 목표에 부합할 수 있는 실천적 합리성을 확보한 사업인가. 수도권과 충청권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국민들의 공생적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인가. 이들 질문에 대한 답안 준비가 실용주의적 원칙에 입각해 고려해야 할 해결 방안 모색의 단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