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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수도 이전 '교과서'대로 (2004-08-04)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13


  정책적 담론이 선행되어야 할 수도이전 논의가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진 정당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의 정치싸움으로 이미 변질된 형국이다. 이것은 수도이전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국토계획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설정 및 수도권과밀과 지방공동화라는 상황인식 자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실종된데 주로 기인한다. 이러한 공감대 실종의 가장 큰 원인은 수도이전에 대한 현 단계의 논의가 첫째 목표의 설정, 둘째 상황의 분석 및 예측, 셋째 대안의 설정 및 평가, 마지막으로 집행의 단계를 밟는 정상적인 국토계획의 절차적 측면과 유리되어 있다는데 있다.
  수도이전이라는 중차대한 국책사업에 계획목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부재는 절차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상적인 국토계획의 실종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러니다. 국가의 존망을 가름할 수도 있다는 수도이전사업이 국민적 공감대에 근거한 목표설정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현 정권은 계획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집행의 단계로 강제하고 있다. 수도이전과 수도권 규제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여 수도이전이 순조로우면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등 각종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소위 ‘신행정수도와 수도권 규제개혁 폐지’의 ‘빅딜’과 같은 발상이 대통령 정책자문위원장에 의해 제기되기도 한다. 이것은 수도이전사업이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의 경제적 비효율성 해소라는 명시적 목적과는 유리된 정치적 목적의 사업이라는 반증이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수도이전에 대한 대안들 역시 정상적인 국토계획 절차와는 유리된 것이다.
  수도이전과 관련하여 일부 전문가들의 개인적 의견에 따라 제시되는 대안들은 너무 다양해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수도이전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생각들은 ‘수도이전 국민투표하자’ ‘국회가 다시 민의 수렴’, ‘거국적 합의기구 설치’ ‘수도이전보다 대학도시건설’ ‘신행정수도대신 특별행정시 건설’ ‘기업도시 건설’ '통일수도도 국민투표를'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은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실시한다는 신행정수도건설 사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즉 제시되고 있는 대안들 역시 계획목표의 설정과 상황의 분석 및 예측이라는 국토계획의 첫째와 둘째 단계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비판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라는 정부의 정치적 주장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 역시 정상적인 국토계획의 절차적 측면과는 거리가 멀다. 대안을 제시하는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학자들인 점을 고려하면 목표의 설정과 상황에 대한 인식의 부재 상태에서 대안의 제시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국가공간계획에 대한 목표설정과 상황인식 자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수렴할 수 있는 통합적 합의기구 마련이 최우선 되어야한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객관적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논의의 장 자체를 현 정권이 부정하는데 있다. 수도이전에 대해 수십회에 달하는 객관적 논의의 장을 마련했음에도 언론과 국민들이 무시했다는 대통령의 주장이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로 국민들이 수도이전을 승인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지금과 같은 정부 일방의 전문가 선임 및 일방적 공청회 개최는 상생의 정신에 반하는 상쟁의 단초에 지나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수도이전과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을 하나의 제도화된 장에서 모이게 하는 일이다. 제도화된 기구에서 수도이전과 관련한 모든 객관적 증거를 국민에게 제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 국토계획의 절차다. 수도이전이 국가의 흥망을 가름할 중요한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합리적 국토계획의 순리를 지켜 나가는 것이 국가 발전의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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