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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국제경쟁력 없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 (2004-06-07)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34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뭐 있냐?” “국제경쟁력 없는 X들이 입만 살아가지고” 술자리에서 오간 거친 얘기를 지면에 옮겨서 아쉽지만 우리나라 자연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일단의 시각이다. 황우석교수의 사례는 차치하고라도 최근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학문적 국제경쟁력 증진은 ‘일취월장’ 그 자체다. 미국 과학정보연구소(ISI)가 제공하는 과학논문색인(SCI)에 등재된 논문 평가에 의하면 2003년 현재 우리나라는 13위, 서울대학교는 전 세계 대학 중 34위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BK21 등과 같은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비슷한 수준의 순위를 내고 있는 국가 및 대학의 월등한 연구비 수준을 생각하면 기적 같은 현실이다.
  ISI에서 색인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분야의 국제학술지에는 사회과학논문색인(SSCI)와 인문과학논문색인(A&HI)이 있다. 그 누구도 내놓고 거론하지 않지만 이러한 색인에서의 우리나라 국제 순위는 차마 언급하기 민망한 수준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2003년이 되서야 한국사의 일부가 미국 교과서에 1쪽 실리고, 네티즌에 의해 구성된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라는 사이버민간외교사절단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가 바로잡혀지는 것이 현실이다. 고구려사의 문제, 독도 영유권 및 동해표기 문제, WTO에서의 수세적 협상력 등과 같은 중요한 국제적 논쟁에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의 국제경쟁력 결여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까?
  세계화시대에 우리의 논리를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백날 떠들어봐야 헛일이다. 객관적 시각에서 세계 지식층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는 학문적 성과의 국제화가 선결여건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순한 처방으로 인문사회분야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첫째, 학술진흥재단의 인문사회분야 기초학문 육성사업을 지속하라. 2002년 시작된 이 사업은 불과 3년간의 한시사업으로 설정되어 있다. 인문사회과학의 기초가 3년에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사업의 기간 연장 및 연구비의 증액을 통해 자연과학과 같이 인문사회분야도 국제적 성과를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둘째, 자연과학의 경우와 같이 인문사회분야의 연구비지원에 있어서도 연구결과의 국제학술지 게재를 의무화하라. 연구성과물 게재에 있어 현재와 같이 국내학술지와 국제학술지의 동류 취급은 쉬운 길로 가려는 연구자의 타성을 부채질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국내학술지의 위축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국내용 학술지는 도태되는 것이 학문발전에 이롭다.
  셋째, 통계청이 만드는 자료를 국제수준화하라.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기초자치단체의 지역총생산(GRDP)과 같은 주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통계청의 현실이다. ‘인구및주택센서스’와 같은 주요 자료의 후진성은 우리나라 사회과학계가 문제를 제기한 지 수 십년이 지났지만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예산의 증액과 첨단 조사기법의 개발을 통해 국제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연구가 가능한 자료의 공급이 있어야 한다.
  넷째, 학술진흥재단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지원한 연구비를 통해 만들어진 조사자료를 공유화할 수 있도록 하라. 인문사회분야의 기초는 신뢰할 수 있는 포괄적 자료의 존재여부다. 현재와 같이 개별 국책연구소 또는 연구자가 소유하여 다른 연구자의 자료접근성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 세금의 낭비다. 또한 자료의 공유화와 같은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자료의 품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국제경쟁력 제고는 21세기 무한경쟁시대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바퀴의 양축이다. 국제적 경쟁력 없는 인문사회분야의 경쟁력 제고는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다. 같은 수준으로 진전해야할 다른 한 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실질적 국가발전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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