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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국토계획해선 안돼 (2004-04-23)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37


  최근 정치권에 회자되는 ‘상생(相生)’ 또는 ‘공생(共生)’의 논리는 철학적으로도 그 연원에 있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단어다. 이 단어의 대중성은 20세기 중반 철학사상의 학문적 쇠퇴를 겪던 독일 프랑크프르트학파의 구원자로 불리는 하버마스에 의해 일반대중에 친밀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의 시각인 듯 하다. 하지만 이 단어는 엄밀히 말해 미국 '실용주의(pragmatism)'의 거두인 듀이의 '공생론(symbiosis)'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생 또는 상생의 논리가 20세기 초 미국사회에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게 된 것은 미국의 건국 배경인 이민문화에 기초한다. 현존하는 세계사에서 ‘멜팅폿(melting pot)’과 ‘샐러드볼(salad bowl)’과 같은 다인종 사회의 문제점을 경험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종의 결합을 위한 최선의 제도적 장치는 ‘다원주의(pluralism)’였다. 이러한 다원주의의 철학적 태동배경에는 실용주의에 입각한 공생의 논리가 담겨있다. 미국의 경우 가장 실용적이어야 할 국토계획에 이러한 공생의 논리가 주요한 이론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공간계획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일면 다양한 가치체계를 지향하고 있는 미국의 50개 주정부의 존재 및 개별 주정부의 재정적 독립성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영국계의 문화적 전통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루이지애나주(state)나 미네소타주 등과 같은 경우는 스페인 또는 북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현재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와는 다르게 개별 주정부의 재정은 모두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직면해서는 연방정부 차원의 통합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주정부의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진흥지역(empowerment zone)'의 지정과 '기업촉진지역(enterprise communities)'의 지정을 통해 수백억에 달하는 연방정부 지원을 통해 주정부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역불균형은 훨씬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불균형발전이론에 기초하여 막연한 미래의 긍정적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정책입안자들의 현주소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국가의 주요 공간계획이 ‘상생의 경제’를 주창하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타산에서 무분별하게 시행되는데 있다. 광복 이래 가장 큰 국책사업으로 간주되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은 총 백조가 넘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리라 예측된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이 지역간 균형발전보다는 기 심각한 지역간 불균형을 경험하고 있는 경부축에 위치한 지역과 기타 지역간의 불균형정도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난 연말 국회에서 통과된 세 가지 특별법 중 신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외한 두개 법안인 ‘지방분권특별법’과 ‘지역균형발전특별법’은 정치적 색채가 옅은 실질적 지역균형발전의 틀을 구비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이러한 특별법의 실질적 실천여부가 최근 정치가들이 몰이해 속에서도 줄곧 입에 달고 다니는 ‘상생의 경제’가 ‘지역상생’인 지역균형발전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 더욱 부합되는 상생의 논리는 이타주의적(altruistic) 사상에 기반하고 있는 미국 실용주의의 ‘공생론’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중용(中庸)에서 찾는 것이 나을 듯하다. 중용에서는 정치인(治者)의 정치도리(治理)에 대한 아홉가지 상도(常道)를 제시하면서 정치인의 ‘상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처방을 내리고 있다. 그 첫째는 다른 지역 출신에 관대하라(遠方寬柔)는 것이고, 둘째는 의견이 다른 정치인을 포용(諸侯包容)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두 가지 덕목의 실천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상생의 경제’일 것 같다. 지역이기주의에 기반한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이 아직까지는 여기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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