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지방행정체제는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초에 중앙 통치의 용이함과 행정의 편의성을 목적으로 기본 골격이 형성된 후 지금까지 큰 틀이 바뀌지 않은 채 유지돼 오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행정구역은 공간이 지닌 정체성과 역사성 등을 반영하는 연유로 사회적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경제적 조직과는 달리 사회적 탄력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행정구역의 경직성은 세계화·지방화의 진전과 지식기반경제 시대의 전개 등 시대적 상황 변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돼야 하는 지역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교통 및 정보통신의 발달로 공간적 범위가 넓어진 경제적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불일치는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하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을 통해 완화시킬 수 있으며 개편의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 간 통합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 간의 통합은 행정구역의 통합을 의미하며 도·농 분리형 행정구역을 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198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초기에는 경제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정의 효율화란 관점에서 집적의 경제와 개발이익의 확산이란 이론적 틀에 바탕을 두고 도시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정구역의 통합이 추진돼 왔다. 현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부터는 지방지차단체간의 자발적 통합을 유도하고 있으나 주로 도시지역 간의 통합이 주요 의제로 등장하고 있을 뿐 농촌이 중심이 된 농촌자치단체간 통합은 논의에서 배제돼 왔다.
농촌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통합했을 경우 도시 자치단체간 통합에 따른 편익보다 더욱 큰 행정적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우리나라 농촌자치단체의 평균 인구수가 적정 수준의 지방정부 규모에 절대적으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적정 규모에 대한 논제는 이론적인 논쟁이 많고 실증적 검증이 어려운 한계는 있지만 행정 서비스 이용 측면에서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적정 규모는 55만명에서 60만명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농촌지역인 군 지역의 평균 인구 수는 5만6000명에 불과해 합리적 측면에서의 행정적 효율성을 달성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것은 행정 효율성을 제고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임은 자명하다. 다른 한편 농촌지역 주민들의 실제 생활권과 행정구역의 일치로 주민생활의 불편함을 덜 수 있다. 아울러 행정구역 통합에 따른 이동 권역의 확대는 지역 간의 지리적·경제적 연계를 강화하는 등의 지역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필자가 최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농촌자치단체의 개편에 따른 효과는 매우 크고 가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활권을 기반으로 한 농촌지역 중심의 지방자치단체 간 통합이 가능한 4개의 사례 지역(경기도 2개 농촌자치단체, 강원도 2개 자치단체, 경상남도 4개 자치단체)을 분석한 결과 행정구역 통합 후 인구 1인당 행정비용 절감 효과는 모든 지역에서 정(+)으로 나타났다. 지역 간 통합에 따른 경제적 효과 역시 지역별로 최소 15% 수준에서 최대 60%의 순증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하기 시작한 행정구역 통합에 대한 논의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광역경제권 추진에 따라 더욱 효율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매우 긴요함에도 자치단체간 통합에 대한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음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 농촌지역 자치단체의 평균 재정 자립도는 대부분 30%에 미달하고 있으며 10% 대의 자치단체도 수십개에 달한다.
서울의 1개 동에도 미달하는 인구 규모의 농촌 자치단체에 지원되는 행정구조는 최소한 서울의 자치구 수준이거나 오히려 더욱 다양한 편이다. 대부분의 지역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함에 있어 농촌지역이 도시지역에 비해 소홀하게 다뤄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농촌자치단체의 통합 효과가 도시자치단체에 비해 큰 점을 고려하면 더욱 적극적인 농촌자치단체간 통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