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이 몰락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이후 지역정책의 수립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지역단위에서의 님비(NIMBY)와 핌피(PIMFY) 현상의 만연이라 하겠다. 핵 폐기장 설치에 따른 부안군 사태가 전자의 경우라면 영남권 신공항 유치에 따른 지역간 갈등이 후자의 전형적 사례다. 이러한 현상을 민주화의 진전과 자방자치단체제도 실시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도를 넘은 지역 갈등과 지역 이기주의가 야기한 비경제성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정치·제도적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자치제의 실행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지역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면 중앙정부의 책무는 이러한 갈등을 예견하고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지역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 참여정부 시절 설립된 균형발전위원회라 할 수 있다. 비록 자문과 심의가 이 위원회의 명시적 목표이긴 했지만 각 부처와 지역의 의견을 수렴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행해야 할 정책에 대한 시간적·공간적 조율이 이뤄진 기구였다. 부의 공간적 분배를 통해 지역간 균형발전과 국가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념적·이론적 틀을 현실 공간에 접합하면서 야기된 엄청난 부작용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지역 문제를 수렴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은 지대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수도 및 공공기관 이전과 같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시적 기구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존폐의 논란이 있었지만 균형발전위원회는 지역발전위원회로 옷을 바꿔 입었다.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위원회가 자원의 배분을 통한 지역발전의 중요성을 견지했다면 현 정부의 지역발전위원회는 자생적 시장경제권 구축을 통한 지역간 상생을 더욱 강조하는 편이다. 이를 위해 국토의 개발 전략에 대한 기본 단위를 초광역개발권, 5+2 광역경제권, 기초생활권으로 단순화하고 참여정부 시절 중앙부처 위주로 진행되던 균형발전특별회계도 광역발전특별회계로 개편해 지역의 자발적 계획수립 역량의 제고를 더욱 독려하고 있다. 지역발전위원회의 이러한 전략 개편은 세계화 시대 지역 단위에서의 자치 역량 제고를 통해 국가 경쟁력 확보를 꾀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믿는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굵직한 지역정책 사업들에서 지역발전위가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취소에 따른 논란이야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니 위원회가 책임질 일은 아니라 믿는다. 하지만 영남권 신공항 건설에 따른 극심한 지역 갈등과 이에 따른 국력 손실의 논란 속에서 지역발전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에 대한 존재감은 거의 찾기 어렵다. 곧 불거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지 선정과 관련해서도 가장 중요한 입지 선정에 대한 역할은 최소한 언론에 노출되는 여러 정황 속에서는 지역발전위원회와 무관한 일처럼 비친다. 광역발전특별회계로 개편되면서 지자체에 이관한 상당 부분의 포괄보조사업은 주로 지자체의 경험 및 전문인력의 부족에 기인하기는 하지만 계획수립의 정도가 도를 넘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필자가 참여했던 이들 사업에 대한 심사 및 평가과정에서 지역발전위원회가 이러한 실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정황은 찾기 어렵다. 공공기관 이전 및 이에 따른 다양한 지역 갈등과 사업의 실행 가능성에 대한 논제로 들어가면 더욱 참담한 것이 현실이다.
지역발전위원회의 웹(web)에서 표방하는 주요 책무는 지역발전의 정책조정, 광역계획 시행계획, 광역-지역발전특별회계의 운용 등과 같이 지역정책의 핵심적 내용에 대한 심의를 한다고 표방하고 있다. 지역발전위원회는 현 정부 들어 설립된 다른 대통령 직속 위원회보다 훨씬 많은 인력을 가지고 지역 발전과 관련된 정책 및 재원의 집행을 심의하는 기관이다. 현 정부 임기의 남은 2년 동안이라도 표방하는 위상과 세금 쓰는 규모에 걸맞은 위원회의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