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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공정사회 조성의 충분조건 (2010-09-08)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20


  청와대발로 나온 '공정한 사회'가 사회적 화두다. 이 화두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잇따르고 있고 사회적 파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 또한 교차하고 있다. '공정한 사회'가 동반할 사정 정국의 도래 등과 같은 후속 조치를 염려해 하는 얘기겠지만 '청와대는 과연 떳떳한가' '자가당착' 등과 같은 비판들도 동시에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진보진영에서는 현재의 화두가 전두환 정권 시절 내세웠던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구호와 일맥상통하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공정한 사회'는 정치적 구호이기도 하지만 이명박(MB) 정부가 지향해 온 법치의 실질적, 보편적 구현을 위한 실천적 호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교수라는 직업을 갖고 고백하기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대학시절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치기 정도로 치부하고 지나갔지만 입장이 바뀌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시험 감독을 하면서 상당한 부담을 느낀 적이 있다. 나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한 면피와 우리 학생들의 건전한 양식을 믿고 무감독시험 등과 같은 방안을 도입하기도 했다.
  양심에 호소하는 무감독시험 당시 간혹 학생들에 의해 제기됐던 불공정을 야기할 수 있는 시험감독에 대한 시시비비가 제기되기도 했다. 개별 학생들에 대한 학점 부여가 교수의 독립적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무한책임을 생각해 이제는 철저하게 시험 감독을 한다. 수준 높은 양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혹 순간적 편의를 위해 저지를 수 있는 과오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내가 과거 저질렀던 행위에 대한 자가당착적 가책보다 우선한다고 믿어서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저술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인으로 미덕의 관점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해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전통적 이념 논쟁인 하약의 '노예로 가는 길'과 롤스의 '정의론'을 뛰어넘는다. 자유주의 체제에 필연적인 경쟁시장 체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계층에 대한 미덕의 관점에 대한 고려가 청와대가 제시한 '공정한 사회' 형성의 기반이라면 청와대는 최소한 공정사회 형성을 위한 필요조건은 충분히 납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청와대는 공정한 사회의 개념을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사회'로 요약한다. 포퓰리즘적인 공평사회가 아닌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는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향해 온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산업화시대 이후 다양한 기회를 통해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의 이너서클화를 막아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현재 청와대가 주창하는 공정사회의 요지로 판단된다.
  최근 불거진 외교부 장관과 그 자녀의 사례가 대표적인 것이겠지만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만연해지고 있는 이너서클의 구축과 이를 통한 폐해가 선진국 진입의 주요 장벽임을 다수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라 할 이너서클에 진입한 사람들이 쌓아놓은 장벽과 그 장벽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이들 계층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다 넓게 보이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노출하고 있는 계층간 갈등의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MB정부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선진국 수준의 법치 확립 또한 공정사회의 필요조건임은 불문가지다.
  이를 위해 정권 후반기의 정책집행의 기저를 공정한 사회 확립으로 가져가는 것은 다수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믿는다. 특히 초기에 적용되었던 법치 논리가 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핍박을 위한 도구적 모습으로 비쳐진데 비해 현재 내걸고 있는 화두가 주요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공정한 법률적 적용을 통한 서민층과 중산층의 기회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정책 방향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상처' 등으로 위장돼온 기득권층의 불공정 사례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사회 조성을 위한 충분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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