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교훈을 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복되는 과거 사회·경제·정치적 갈등의 사례를 이해하여 동일한 역사적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영원한 현대사로 불리기도 하는 로마사는 시대사의 획을 그은 절대 강국의 이야기라는 흥미도 있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공화정의 법과 제도, 그리고 정치사의 다채로운 변곡점을 내포한 역사적 사실의 정점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역사적 교훈의 원천이다. 로마사의 역사적 사실들 중 정치개혁과 국리민복, 그리고 권력의 창출과 유지라는 시각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례는 그라쿠스집안의 형제 또는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의 개혁정책이다.
수세기에 걸친 초강대국 로마제국의 건설이 가능했던 원천은 정치적 계급간의 조화와 협동이 가능하도록 한 정의와 정당성의 원칙이 필연적으로 국리민복으로 귀결되도록 한 점이다. 하지만 기원전 200년대 연이은 외국 원정과 전투에서의 승리로 카이사르 이전 최대의 제국건설에 성공한 로마의 최대 관심사는 번영에 따른 부의 열매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귀족 계급간 갈등과 독선적 아집으로 인해 로마의 번영을 지속 가능토록 한 국리민복에 대한 덕성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평민계층의 반발을 야기했고 이는 공화정의 붕괴로 발전할 여지를 담고 있었다. 호민관에 연이어 선출된 그라쿠스형제는 기원전 130년대 토지개혁을 통해 번영의 열매를 평민계급과 나눌 것을 역설했고 국리민복이라는 공화정의 원칙을 지향했다. 비록 귀족계급 간 권력투쟁의 와중에 형제가 모두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았지만 이들의 행위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공화정의 유지와 국리민복이라는 원칙을 준수한 행위로 후세 사가들에 의해 칭송되고 있다. 그라쿠스형제를 제거한 일단의 귀족계층이 일시적 권력쟁취에는 성공했지만 공화정과 국리민복이라는 원칙을 무시한 로마제국은 공화정의 해체와 카이사르라는 절대군주의 등장으로 귀착된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에 대한 평판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세종시를 중심으로 보이고 있는 정치권의 작태는 언제까지 우리 국민이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존립을 위해 세금을 내야하는가에 대한 회의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특히 책임 있는 집권 여당 내 정치세력간의 최근 대결 양상은 점입가경이다. 안 그래도 해외발 금융위기와 고용불안 등과 같은 현재형 삭풍과 저출산 및 학령인구 비율 감소, 북한 정권 붕괴 가능성 등과 같은 미래형 불안감을 감내하고 있는 우리 국민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은 현 사태의 본질을 소신과 원칙으로 위장된 정치적 입지의 강화가 주요 목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원칙준수와 궁극적 국리민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우려하고 있다.
집권여당 내 정치세력간 국리민복에 대한 제각각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 원안에 따른 세종시의 발전이 국가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시각은 자가당착이다. 오히려 수도권과 충청권의 연담 도시화를 통해 강원, 호남, 영남권과의 불균형 발전이 가속화할 우려가 더욱 높은 편이다. 또한 최근 북한정권의 심각한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통일 논의에 따른 수도 재설정이라는 비효율성 초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수정안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행정부처 이전 불가론자들의 주장은 정부부처 분할이 필연적 비효율성을 초래해 국가의 패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으나 이 역시 상식 밖의 언행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행정의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충청권의 거대 시장 형성을 통한 국내 소비 진작과 이를 통한 국내총생산(GDP)의 증대 및 새로운 고용 창출에 기여할 가능성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자의적 해석이다.
국리민복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면 결국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가야 한다.
즉 국회라는 대의 민주주의의 장에서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에 대한 결론을 맺어야 한다. 현재의 형국은 박근혜 전 대표가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소신 있는 정치인의 지향점은 권력을 잡지 못했지만 대의를 지향한 그라쿠스형제의 명분을 원용하는 것이며 일시적 권력을 잡았지만 평민계층의 고통을 야기하고 후세의 역사적 비판을 초래한 일단의 귀족계층이 아니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