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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본말전도(本末顚倒)된 행정수도 이전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30


  수도이전이 국민투표 실시여부라는 논의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도이전의 현 단계 논의는 “수도이전이 궁극적인 지역균형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가?” “수도이전이 답보상태에 있는 국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정책인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투표 실시여부에 대한 최근의 논란은 이불리를 따지는 정당간, 자치단체간 이전투구와,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수도이전과 사수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정치싸움으로 귀결되고 있는 형국이다.
  개발독재시대 이래 우리나라의 지역불균형은 심각한 상황이다. 수도권과 영남을 축으로 한 경부축과 비경부축의 불균형이 국토불균형의 단초라면, “서울과 기타 사막”으로까지 명명되는 비수도권의 상실감은 불균형개발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의 정점이다. 수도권의 집적불경제와 지방의 공동화라는 이율배반적인 국토불균형해소가 필요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전문가 및 국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수도이전과 관련된 또 다른 국민의 관심은 수십조 또는 백조가 넘는 국가예산의 지출이 국가경쟁력 증진에 영합게임(zero-sum game)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내부적 균형론에 대한 주장이 궁극적 국가 경쟁력 상실로 귀결되지 않을까? 수도이전이 국민소득 2만불시대의 개막은 커녕 오히려 하락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이러한 질의에 대한 객관적 논거는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합리적 잣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논거는 실종된 채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정당과 전문가들의 개인적 견해만을 들을 수 있는 것이 현재의 형국이다. 수도이전이 국가경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객관적 연구는 실종된 상태다. 수도이전에 따른 지역균형발전 달성 여부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연구결과가 서로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단계 수도이전에 대한 국민투표의 실시는 지극히 합리적이어야 할 국민의 의사가 개인별 또는 집단별 이기주의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민의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객관적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논의의 장 자체를 정부가 회피하는데 있다. 청문회 등과 같은 민의수렴이 100회가 넘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21세기 세계 최고의 정보화 능력을 구비한 국민들을 우롱하는 1960년대식 정치적 발상이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국민이 수도이전을 인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수 있는 수준의 아전인수(我田引水)에 대한 극명한 사례다.
  지금부터 국민이 합리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 제시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자. 수도이전이 수도권과 지방 그리고 경부축과 비경부축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지? 교통혼잡과 환경오염 등과 같은 수도권의 집적불경제 해소는 물론 지방의 공동화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지? 약 45조에서 110조에 달하리라 예상되는 수도이전 재원에 대한 기회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주제를 토의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자. 단 수도이전과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을 하나의 통합된 장에서 모이게 하여 수도이전의 타당성을 검토하자. 지금과 같은 정부 일방의 전문가 선임 및 공청회 개최는 또 다른 갈등의 단초가 될 수밖에 없다.
  객관적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면 이러한 논의는 지금부터 1년이면 충분하다. 수도이전과 관련한 모든 객관적 증거를 국민에게 제시한 후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합리적 절차다. 수도이전이 국가의 흥망을 가름할 중요한 정책이라면 올바른 국민의 선택을 위해 1년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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