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조선일보] 통계청의 쓸모없는 통계 (2004-05-19)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40


  모든 분야에서 “기본” 또는 “기초”의 중요성은 불문가지다. “사상누각”식 건설로 지어진 교량 및 도로는 붕괴와 인명피해를 초래한다. 경제기반이 허약한 국가는 IMF의 예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학문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연과학도 그러하지만 특히 사회과학발전의 근간은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한 객관적 자료의 존재여부다. 특히 실효성과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의 존재는 미래 사회발전의 규범을 세우는 원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통계청이 제공하는 자료는 ‘쓸데없는’ 자료가 너무 많다. 직접비용만 수백억을 들여 매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및주택센서스’는 소득 및 주택가격 등과 같은 주요 경제 변수가 없다. 이러한 변수를 포함하고 있었던 1990년 센서스의 경우 변수의 신뢰성과 지역격차가 밝혀지는데 대한 어려움 때문에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계청의 답변이었다. 1995년 이후에는 설문 자체에서 주요 변수에 대한 내용을 삭제해 버렸으니 문제의 소지를 원천봉쇄한 셈이다.
  매월 또는 매년 실시하는 ‘도시가계조사’나 ‘농가경제조사’도 마찬가지다. 도시가계조사의 경우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봉급생활자에 대한 소득만 구비하고 있다. 또한 이들 자료에는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의 자료획득은 불가능하다. 서울의 강북과 강남이 다르고, 경기북부와 경기남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 대한 실효적 분석은 그만 두고 대충 알고 지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조사대상 주민의 사적정보유출을 막기 위한 고육책 또는 소득 등과 같은 민감한 설문에 대한 답변자의 신뢰성 운운은 전근대적 관료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자료를 제공하는 미국 ‘센서스국’의 경우 모든 자료에 약 10개 이상의 소득원에 대한 변수를 제공하고 있다. 사적 정보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인구 10만명을 기준으로 모든 지역변수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의 자료제공은 영국과 캐나다 등의 선진국도 동일하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첫째, 조사기관의 정보획득에 대한 자세의 차이다. 정확한 정보의 제공이 사회발전에 절실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미국 센서스국이라면, 다 아는 현실을 덮어야 할 그 어떤 필요가 있는 것이 우리나라 통계청이다. 둘째, 보다 신뢰성 있는 자료의 획득을 위해 다면적 조사기법의 개발과 적용이 미국 센서스국이라면, 일회성 조사만으로 자료의 신뢰성을 논하는 것이 우리나라 통계청이다.
  실효성이 있는 통계자료의 구축은 우리나라 사회과학분야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한다. 실효성이 있는 자료를 거의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유학시절, 필자는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귀국 이후 승진도 하고 업적도 쌓을 목적으로 통계청의 자료를 이용해 지난 4년간 약 50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부끄러운 심정으로 고백하지만 이러한 논문들 중 영문으로 작성되어 국제경쟁력이 있는 논문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은 너무 많다.
  지난 수년간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된 자연과학분야의 경쟁력 수준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하지만 차마 치부를 드러내지 않을 뿐 우리나라 사회과학분야의 국제경쟁력은 참담한 수준이다. 21세기 전쟁에서 소총과 칼로 전투에 임하는 격이니 어쩌랴. 단언컨대 자연과학분야와 같은 엄청난 투자 없이도 사회과학분야의 국제경쟁력은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만약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간접자료에 소득과 주택가격, 지역 등과 같은 주요 변수를 포함한다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간접자료의 실용적 생산은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써야하는 통계청의 책무다. 예산문제의 거론은 변명이다. 매년 학술진흥재단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연구비들 중 이들 주요 변수가 제공될 경우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은 1회용 ‘직접조사비’를 생각해보라. 통계청의 결단은 국가예산의 절감은 물론 사회과학분야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2005년 11월 또 다른 ‘쓸데없는’ 센서스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TOP
닫기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