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시장정책 실패가 부른 죽음 (2003-08-06)

관리자l2020-09-14l 조회수 426


  사회적 타살로 간주되는 빈곤계층의 자살 소식이 최근 주요 뉴스를 차지하더니 이번에는 칭송받던 한 기업가의 좌절과 이에 따른 자살소식이 우리 사회에 암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자살한 정몽헌 회장은 김대중 정권 이래 남북 교류의 주요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가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북 송금에 대한 특별검사 및 검찰의 수사로 드러나고 있듯이, 정회장이 사운을 걸고 추진해왔던 대북사업은 반국가적 사업으로까지 간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는 대북사업자금이 북한의 핵개발에 전용되어 현재의 한반도 긴장상황을 초래했다는 극단적인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러한 주변상황의 전개가 정회장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으리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황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정회장과 같은 경륜과 의욕을 가진 기업인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인재 키우기에 인색한 한국적 정황에서 정회장과 같은 사업 및 경영 경험을 가진 기업인의 손실은 그가 관여해왔던 대북사업 및 유관 기업 활동의 위축이 불가피하리라는 측면에서 한 개인의 죽음 이상의 사회적 파장이 예측된다. 정회장의 죽음은 특히 김대중정권 이래 정부가 취해온 대북정책의 희생양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수많은 북한 퍼주기 사업이 통일비용과 미래 한민족의 통합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져 왔고, 이러한 대북 정부정책의 최선봉에 정회장과 현대아산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회장 죽음의 단초가 정회장 개인이 내린 사업판단의 미숙에도 책임이 있지만, 정치논리에 기반하여 대북사업 참여를 적극 조장한 김대중정권과 이를 계승한 현 정권은 정회장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체제에서 정치와 경제는 유리되어 그 존재의미를 찾는 것이 이상적이다. 정치와 경제의 연관성이 높을수록 국가 및 사회체제는 후진성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고 경제수준은 낙후되기 마련이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국가에서 국민소득 2만불 수준의 사회를 허락하지 않고 있음을 세계사는 보여준다. 즉, 정치가 경제적 논리를 지배하는 한 한국사회에서 국민소득 2만불시대의 도래는 환상이다. 이것은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경제논리가 정치적 논거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를 조율하는 시장의 한계는 빈곤층의 생성 등과 같은 계층간, 지역간 격차 등과 같은 시장실패의 경우다. 이러한 경우만이 정치의 경제개입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된다.
  문제는 정치의 개입이 필요한 빈곤층문제에는 정부 정책의 개입이 원활치 못한 반면, 시장에 의존해야하는 부분에서의 정치개입이 ‘정치적 판단’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진다는데 있다. 즉, 시장실패로 인해 생의 한계선으로 몰려지는 빈곤층에 대한 정부정책의 부재와 시장기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하는 기업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이들 집단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시장개입의 원칙에 충실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하지만 “못해먹겠다”는 수준의 정권이니 “죽고 싶다”는 수준의 정권으로 발전하지 않기만을 걱정해야 하는 현 상황은 답답한 일이다. 특히 최근과 같은 경기침체기일수록 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정부 시장개입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학의 원론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정부의 관심은 정권에 대한 쓴 소리를 내는 언론과의 전쟁이나 벌일 궁리만 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문제 발생시 책임론에 대한 공방은 우자(愚者)의 처세이고 식자(識者)는 원인규명에 치중하는 반면, 현자(賢者)는 재발방지를 위한 교훈 발견 및 대책을 세우는 법이다. 정회장의 죽음을 대북송금에 따른 위법사실과 이에 따른 개인적 성격의 일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우자의 표본이다.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사회빈곤층의 생활고에 따른 자살이 사회안전망 부재에 따른 사회적 타살로 간주되어 다양한 빈곤층에 대한 다양한 사회보장책이 준비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조명하면, 정회장의 죽음은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대북 경제정책을 조장한 정부에 의한 타살에 다름 아니라는 식자의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정회장의 죽음이 차제에 기업과 기업인이 시장이라는 경제 환경에 보다 충실할 수 있는 정부정책 수립에 대한 계기의 마련으로 삼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정회장의 죽음에 대해 현자가 가지는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