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0대 국정의제들 중 가장 논란의 핵심이 되는 의제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다. 현재 이 의제의 핵심은 지방화의 실천이라는 규범적 함의와는 달리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작용한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논의로 귀착된다. 행정수도이전은 선거과정에서 급조된 공약이라는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낙후라는 두 가지 난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분산형 수도모형’ 등과 같은 실행모형이 인수위 내부에서 고려되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행정수도이전에 따른 편익은 교통난, 주거비용 급증, 환경오염 등과 같은 집적의 비경제 현상의 완화 가능성이다. 행정수도이전에 따른 지방분권은 개발시대 불균형개발정책에 따라 ‘서울과 다른 사막’으로까지 명명되는 국토공간의 불균형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개발독재시대 거점개발의 주요 축에서 소외된 강원과 호남지역 주민들의 복지수준이 개발축에 위치했던 영남과 수도권 출신주민에 비해 낮은 것으로 분석된 최근의 연구 결과는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한 중요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의 행정수도이전 및 신도시 건설은 미래적 가치를 중시하는 계획가적 시각이 결여된 단견이다.
첫째, 행정수도이전은 인수위원회가 주요한 의제의 다른 한 축으로 제시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이라는 틀과 배치된다. 도시 및 지역계획에 관한 최근의 국제적 논의는 모든 부분에서 집적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초대형도시가 세계화시대 국가발전에 중추적 기능을 수행할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이 국가 단위에서의 경제발전에 대한 청사진에 대한 필수조건이라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수도권은 도쿄, 싱가폴, 홍콩, 상하이 등과 같은 국제도시와의 경쟁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주요 행정기능의 지방이전은 동북아 중심 국가로의 비약에 경쟁력 약화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국제학회에서 논의되고 있듯이 도시 공간 확산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는 후기확산(post-sprawl)의 경제적 효율성 역시, 집적의 비경제 완화를 위한 행정수도이전이라는 주장과는 유리되는 내용이다.
둘째, 현재의 행정수도 이전은 통일 이후 국토공간의 활용에 대한 고려를 결여하고 있다. 충청권에서의 행정수도 입지에 대한 정당성은 기타 지역에서의 중립적 접근성 확보를 통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규범적 측면에 기초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남북 분단 상황 하에서는 분명히 충청권이 중립적 접근성과 균형발전을 보장하는 지역이다. 접근성과 국토의 균형발전이 행정수도 입지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이러한 전제조건에 따른 충청권의 행정수도 입지가 통일 이후에 부합되지 않음은 명약관화하다. 분단 상황에 대한 고착화가 노무현정부가 가정하고 있는 주요 강령이 아닌 한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이전은 추후 예측되는 남북통일이라는 가변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단견일 수밖에 없다.
셋째, 현 단계에서의 행정수도 이전은 제4차 국토종합개발계획(2000-2020)의 전면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제4차 계획은 약 20년의 기간을 설정한 장기계획이며,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동북아거점국가 건설 및 통일 이후의 국토발전을 염두에 둔 계획임은 물론이다.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은 이러한 계획골격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가치중립적 위치에서 수립된 국가의 장기계획이 채 시행되지도 못하고 정치적 논리로 수정된다는 측면에서 큰 문제다. 정당간 정권교체에 따른 국가기간계획의 조기 수정도 문제지만, 동일 정당의 연속 정부에서도 기간계획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전근대적 정치의 발상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국정비전을 ‘동북아 중심국가’와 ????지방화????로 요약한다면 현 단계에서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이전은 경제발전과 국토계획의 관점에서 상치되는 논리다. 행정기능과 경제기능의 지리적 유리가 정보산업의 진전에 따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보산업의 지리적 집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빗나간 예측이 주를 이루었던 1990년대 초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행정수도 이전 및 건설은 향후 예측되는 미래 상황에 대한 고려는 물론 세계화시대 국가경쟁력에 대한 고려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선진정치개혁 중의 하나는 선거 당시 급조된 공약으로 인해 국가발전의 기간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