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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사춘기 막내딸과 한명숙 대표(2012-03-07)

관리자l2013-07-18l 조회수 1389


 필자가 마흔에 얻은 막내딸과는 (과거형의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소위 죽고 못사는 사이였다. 아내와 지금은 대학생이 된 열 살 터울의 큰딸도 필자의 막내딸에 대한 편파적 사랑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해 왔다.

아빠가 이렇게 한심한 처신을 하다 보니 큰딸의 서러움은 꽤 컸나보다. 큰 애가 대학에 입학한 2년 전 아빠에 대한 원망과 서러웠던 시절을 표시하는데 그때 필자가 얼마나 한심한 아빠인 줄 깨달았다. 10년 차이가 나는 작은 애가 언니에게 대놓고 대들어도 다 큰 녀석이 그걸 이해 못하냐며 작은 애 편들고. 해외 출장에서 가지고 오는 선물도 막내 것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고르고. 아내도 큰 애가 워낙 생각이 깊고 심성이 착하니까 버텼지 그렇지 않았으면 철없는 아빠 때문에 사춘기 시절 한참 엇나갔을 거라며 질책한다.
 
 퇴근할 때 학원에서 막내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것이 삶의 주요 재미 중 하나였던 지난 수년간이 있었지만 막내딸과 사이가 소원해진 것은 (지난 가을의 어느 시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불식간이었다. 다 큰 녀석이 아빠와 같이 자려 한다고 엄마가 질책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던 녀석이 제 방에 출입도 하지 말란다. 출퇴근할 때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항상 하던 뽀뽀를 하지 못하게 한다. 집에서든 어디서든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얼굴을 보면 고개를 돌리거나 쳐다보지 말라며 무안을 준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말을 들어주기 지겨울 정도로 조잘거리던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단답형 답변 외에는 하려 들지 않는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환심을 사려고 녀석이 좋아하는 고가의 선물을 샀지만 '생큐' 한마디뿐이다. 정신 나갔냐는 아내의 볼멘 소리가 필자의 철없는 행동을 각인시켜줄 뿐이다.

지난 늦가을부터 필자에게 추가적인 학교 업무가 가중돼 막내아이 볼 기회가 적어지긴 했지만 180도 바뀐 딸아이의 변심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막내 아이의 돌변한 언행과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지금은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둔 필자의 연구실 출신 여제자 중 하나는 막내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나오는 모습이란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여학생도 동의한다. 선생님이 불쌍하다고 그리고 지금의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며 술을 권한다. 술을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막내 아이에 대한 나의 심경을 토로하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다. 그렇게 편애하고 버릇없이 키워 큰 애의 심정을 상하게 하더니 큰 애보다 심한 막내의 사춘기 행동은 모두 다 나의 책임이란다. 반려자가 아니라 원수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기도 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면 곧 관계가 회복될 거라며 위로하는 것도 잊지 않긴 했지만. 어느 포털에서 사춘기를 치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란다. 아이가 커가기 위해 부모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제자들의 말대로 역경을 이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무수한 논란 끝에 오는 15일 발효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정치권의 돌변은 사춘기를 보내는 막내딸을 바라보는 필자의 심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고 민망하다. 수많은 여야 정치인 중 특히 한명숙 전 총리의 변신은 압권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과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우리나라 정치인의 주요 덕목(?)임을 어제 오늘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라는 국무총리를 거쳐 통합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전 총리의 언행과 처신은 가히 변신의 정점을 보여준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다수당의 가능성이 유력한 거대 야당 대표로서 정치의 계절 표계산을 해야 한다는 심산인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할 말은 가려하는 것이 전임 총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믿는다. 이러한 처신이 지난 시절 국민의 편애에 따른 결과라고 항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대표의 연세를 고려할 때 아직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덜 성숙해 성숙한 변신을 기대하라는 국민에 대한 요구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http://www.fnnews.com/view?ra=Sent1801m_View&corp=fnnews&arcid=201203080100053990003052&cDateYear=2012&cDateMonth=03&cDateDay=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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